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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권 212호, 재창간 7호 | 2026년 5·6월호
    발행일 2026.5.5
    출판사 사상계 미디어(주)
    ISBN 979-1199-2039-6-9
    ISSN 0558-6798
    쪽수 384쪽
    목차
    1. 흑표지(날개 안상수의 《사상계》 타이포그라피)
    2. 권두사: 오·五·汚·誤_장백산
    3. 담시 신오적_편집부
    대담한 대담1
    1. 1-1. 신오적, ‘마피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_김용철, 정준희, 하승수 대담
    2. 1-2. ‘마피아(기득권 카르텔)’ 국민여론조사 결과_장백산
    특집: 신오적, 마피아를 해부하다!
    1. 사법마피아
    2. 1. 권력의 시녀를 넘어 ‘괴물’이 된 사법권력_박지웅
    3. 2. 검찰은 어쩌다 ‘마피아’ 소리를 듣게 되었나?_이광철
    4. 3. 전관前官카르텔, 반드시 타파되어야 한다_하승수
    1. 원전마피아
    2. 4. 다시 부상하는 원전마피아_이헌석
    3. 5. 글로벌 핵마피아_민정희
    4. 6. 재생에너지 VS 원전, 공존은 없다_조원일
    5. 7. 에너지마피아가 에너지를 죽인다_유치종
    1. 기독마피아
    2. 8. ‘기독교마피아’의 탄생_손원영
    3. 9. 한국기독교, 역사의 “기피아”가 되려는가?_이호재
    4. 10. 기독교는 어떻게 마피아가 되었나_조용식
    1. 재벌마피아
    2. 11. 재벌 악폐, 이제는 청산하자_이인형
    3. 12. 재벌마피아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_안치용
    4. 13. 신흥재벌, 네·카·라·쿠·배·당·토_조윤지
    1. 언론마피아
    2. 14. 언론마피아, 거듭나야 한다_이명재
    3. 15. ‘유튜브마피아’, 공론장을 잠식하다_이재덕
    4. 16. 디지털 공론장의 몰락과 사회적 공공재로의 전환_권오현
    화쟁和諍
    1. 1. ‘아는 자는 아는’ 일이 어찌 없으랴!_김병기
    시사時思
    1. 1. 트럼프는 어떻게 미국을 추락시키고 있는가_이강국
    2. 2. 폭격을 결정한 것은 인간인가 알고리즘인가_문아영
    3. 3.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의 민낯_남기업
    목차
    1. 백표지(이철수 화백의 〈무문관〉 판화)
    2. 권두언: 오명汚名_조성환
    3. 대담한 대담2: 대한민국은 ‘독립’ 국가인가?(2)_김누리, 이정옥 대담
    4. 사상계 옛글 갈무리: 안의섭과 신동헌의 시사만화_이정하
    연재: 사상을 잇다
    1. 1. 이계호의 생명나눔 이야기(3)_고기를 먹지 말자고?_이계호
    2. 2. S.O.S.(3)_봉황각_현경
    3. 3. 무문관無門關(3)_이철수
    4. 4. 도시락(5)_사상이 있는 찻집 2題: 고차수와 죽향_유다님
    5. 5. 신동학에세이(3)_신동학 관점의 한국과 조선 관계 해법_구해우
    6. 6. 神學에서 信學으로(3)_위기와 전쟁의 일상화 시대, ‘공空’에 대해 생각하다_이은선
    7. 7. 다시 경계에서 말한다(2)
      세상 천하를 걱정하기 전에 내 주변부터 즐겁게_우에노 지즈코
      제국 이후의 삶을 이미 살아가고 있으니까_조한혜정
    8. 8. 세대간 마니또(2)
      닮고 싶은 선배 할머니께_장혜영
      법을 사랑하는 방법_박은정
    9. 9. 이 아무개의 예수선생전(3)_진심으로 아멘입니다_이현주
    문예: 자연을 짓다
    1. 1. 여는 글_문예편집위원
    2. 2. 김혜나의 도시(3)_붉은빛_김혜나
    3. 3. 미리보기&마주보기(2) 미리보기: 〈피막〉을 다시 쓴다면_김수경
    4. 4. [시] 이명 / 나비는 어디쯤일까_최서진
    5. 5. [시] 베스킨라빈스 31 / 거울2/1_박서영
    6. 6. [인터뷰] 취향의 시간(1)_차와 문학의 만남_이제야
    7. 7. [소설]생일_최유안
    8. 8. [서평] 극단의 시대에 영성의 정치학을 만나다_박은홍
    9. 9. [책소개] ‘마피아’ 도서 큐레이션_편집부
    환경/생태 News&olds
    1. 1. 아버님의 유품을 기증합니다_유다님
    2. 2. 멈추고, 마주하고, 전환하라_유정길
    3. 3. 제국의 귀환인가, 주권 질서의 붕괴인가_국경없는아시아

    원고 전문 일부만 싣습니다.

    언론마피아 1. 언론마피아, 거듭나야 한다_이명재(특집: 신오적, 마피아를 해부하다! / 흑표 140-152쪽)

    언론마피아, 거듭나야 한다 

    - 언론은 자유를 감당할 수 있는가 -   

                                  


    필자소개: 이명재(시민언론 민들레 대표)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회에 발을 내디딘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사회를 배우는 ‘영원한 학생’이라는 자각 속에 살고 있다. 이미 배운 것보다 앞으로 배워야 할 사회의 이면이 더 많다는 것을 늘 확인한다.

    신문사와 국가인권기구 등을 거쳐 현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 몸담고 있다. 기성 언론의 한계를 넘는 ‘대안언론의 대안’, 그리고 권력에 맞서는 ‘대항언론’으로서의 《민들레》 창간 작업부터 함께했다. 

    언론인으로서 일의 본질은 단순히 사실을 옮기는 ‘기記’에 있지 않다고 본다. 그 이전에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눈인 ‘관觀’을 바로 세우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믿는다. 나이가 들수록, 경력이 쌓일수록 명확한 ‘관’을 갖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음을 실감한다. 다만 사회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불가피한 현실’을 ‘불가피하지만은 않은 사정’으로 치환해 논의의 장을 넓히는 일, 그것이 학생으로서 더욱 배워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비어 있는 권두언

    1959년 2월, 《사상계》의 권두언 난은 비어 있었다. 단지 제목 6자만 적혀 있었다. “무엇을 말하랴”. 그뿐, 내용은 빈 칸이었다. 4·19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 이승만 정부의 전횡과 억압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절이었다. 빈 지면은 독재권력의 검열과 독재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항의였다. 발행인 장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말하고자 했다. 무엇을 말하랴, 그 여섯 글자와 텅 빈 여백은 어떤 웅변보다 더 많은 것을 독자에게 전달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언론은 정반대 상황에 놓여 있다. 언론사는 많아졌고, 말이 넘쳐난다. 활자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뉴스가 분초 단위로 뜨며, 유튜브 채널마다 말의 성찬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말들의 홍수 속에서 정작 말해야 할 것이 말해지고 있는가. 장준하의 빈 칸이 침묵으로 진실을 가리켰다면, 오늘의 언론은 넘치는 말로 진실을 가린다. 그것이 지금 한국언론의 초상이다.

    한국언론의 현실에 대해 영국작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을 빌어 얘기해 보자.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으며,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19세기의 상충하는 모순을 디킨스는 이렇게 서술했듯, 지금 한국에는 두 개의 상반된 나라가 공존한다. 한편에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 그러나 그 이면에는 최악의 나라라는 그늘이 있다. 그리고 이 대립하는 양가성이 집약된 곳이 바로 한국언론이다. 

    한국언론의 상황을 보여주는 두 개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12·3 비상계엄 쿠데타 이후 수개월간 광장에서 촛불과 응원봉을 든 국민이 외친 구호다. 이들이 손에 쥔 피켓에 쓴 건 ‘윤석열 탄핵-김건희 구속’, ‘검찰개혁’, 그리고 다름 아닌 ‘언론개혁’이었다. 다른 하나는 최근 벌어졌던 오보에 대한 사과 요구에 방송사 노조가 거세게 반발한 일이었다. 조폭 연루설 오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방송사에 당시 피해자였던 현직 대통령이 공개사과를 요구하자 방송사 노조가 성명서를 내면서 규탄했다. 노조는 ‘언론 길들이기’ ‘언론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라고 성난 목소리를 냈다. 이 성명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대통령에 대해 권력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잊지 말라고 한 대목이었다. 그것이 드러내는 건 언론이 스스로를 본질적으로 비非권력적 존재이며 약자로 보고 있는 인식이었다. 대통령이 하나의 권력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방송사 노조가 그 자신에게 동시에, 또는 상대를 향하기 이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던져야 했을 질문도 바로 그것이었다. 



    ‘독獨’하려면 ‘립立’부터 해야 

    자신이 갖는 권력에 대해, 스스로 그 권력의 행사에 문제는 없었는지에 대해 먼저 물어야 했다. 이 두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광장의 시민들의 언론개혁 요구 분출은 한국의 언론이 중요한 개혁대상으로 간주된다는 것, 다시 말해, 문제해결자―최소한 해결기여자―가 돼야 할 언론이 그 자체로 ‘문제’가 돼 있다는 것이다. 방송사 노조의 성명은 ‘언론은 자신의 힘과 권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노조의 성명에 깔린 건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일 것이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대원칙과 전제가 당연하고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언론이 빠지는 함정은 그 독립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또 단지 외부로부터의 독립인지에 대한 부족한 탐색에서 비롯된다. ‘언론독립’은 주로 외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이해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본으로부터, 광고주로부터 편집권을 지킨다는 것, 이 원칙은 물론 항상 중요하다. 그 외부에 대한 독립을 스스로 얼마나 지키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기서 따지지 않기로 한다. 부당합병, 경영권 불법승계 등 혐의를 받은 삼성 회장에게 무죄가 선고됐을 때의 언론 보도는 굳이 여기서 얘기하지 않기로 한다.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구원해 줄 구세주의 ‘강림’을 영접하는 듯했던 언론보도의 홍수는 차치하기로 한다.

    다만 언론의 독립은 오로지 바깥 힘으로부터의 독립만이어선 안 된다. 그것은 또한, 아니 더더욱 자신의 오만과 선입견과 무지로부터의 독립을 또한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외부로부터의 독립의 전제다. ‘독립獨立’의 ‘독獨’이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에 대한 차단과 거부라면, ‘립立’은 그 자신이 스스로 설 수 있는 능력과 의무인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의 독립과 자유는 한편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구속과 통제여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갖는 권력을 무책임하게 행사하고 싶은 충동으로부터의 독립, 자신의 보도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조직내부의 관행과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나태와 안일로부터의 독립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스스로 서야[立] 외부의 힘으로부터도 자신을 지켜낼[獨] 수 있다.

    ‘독獨’ 이전에 ‘립立’을 보여줘야 하는 한국언론. 그 현주소는 몇년째 세계 나라별 언론 신뢰도 평가에서 최하위에 고정된 데서도 드러난다. 더구나 스스로를 언론으로 세우지 못하는 언론의 홍수는 지금의 한국언론 상황을 풍요 속의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언론사는 많지만, 언론은 없다. 



    진실을 덮는 신오적新五賊 언론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포고령에는 언론과 관련해 ‘모든 언론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라고 하며,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만약 12·3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상당수 기자가 체포·구금·압수수색과 함께 ‘처단’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고통과 억압의 시간을 저지하고 뒤집어놓은 것은 언론이 아니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었고, 계엄을 막아낸 국회였다. 언론이 자유를 누리는 지금 환경은 시민들의 저항과 투쟁의 산물이다. 언론은 수혜자이지, 변화의 주역이 아니다. 언론은 국민이 만들어준 언론 유의 회복에 상당 부분 얹혀 그 수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지 계엄사태 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발전과 개혁의 순간들에서 언론이 과연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질문과 연결돼 있다. 한국사회의 발전과 성숙은 대체로 ‘언론과 함께’ ‘언론에 힘입어’라기보다는 ‘언론에도 불구하고’라고 해야 마땅할지 모르겠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급락했던 때가 있었다. 2024년 열다섯 단계나 추락해서는 2025년에도 60위권에 머물렀다. 한국의 언론자유가 2년 연속 ‘문제 있음’의 60위권으로 떨어진 것은 무엇보다 윤석열정권의 강압적 언론정책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국의 언론자유가 퇴행했을 때 국민은 적잖은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언론에는 그 같은 고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국언론 일부에게 수난과 고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주류 언론은 그런 환경에 불편해하고 고통받기보다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쪽을 택했다. 그 고통과 퇴행조차 사실은 다수의 주류 언론 때문에 초래된 것이었다. 윤석열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대통령으로 밀었던 것은 물론,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3년 동안 비판과 견제는커녕 미화와 비호로 거의 일관했다. 차마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찬미가를 불러댔다. 그가 ‘종북 반국가 세력’ 운운하며 야당과 시민세력을 탄압할 때도 주류 언론은 장단을 맞췄다. 경제와 민생의 파탄 위기에서도 많은 언론들은 찬송가를 불러댔다. 언론이야말로 윤석열의 내란 망상의 중요한 원천이었다.

    내란청산은 그러므로 쿠데타 세력의 단죄와 처벌과 함께 언론에 대해서도 ‘거듭나기’라는 시험대가 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내란청산에 대한 보도를 보면 다수의 언론은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내란세력 가운데 처벌받은 이는 거의 없었던 상황이지만 “내란 청산은 이제 그만하자”라는 말이 언론으로부터 나왔다. 이들에게 청산할 것은 내란이 아니라 오히려 ‘내란청산’인 듯했다. 어느 신문은 “이제는 내란청산에 그만 매달리고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의제에 매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래설계가 과거를 제대로 정리 청산하지 않고 가능한 일인가? 과거청산이 곧 미래설계이기도 하다는 것을 무시한다. 〈계엄의 밤 1년, 어둠은 걷히지 않았다〉 기사에서 “국격 추락까지 불러온 ‘그날’의 1년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했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명백하게 밝혀진 진실마저 언론이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니, ‘언론은 과연 진실을 밝혀내는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덮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나올 법하다. 위의 기사 제목처럼 어둠은 걷히지 않았다고 했지만, 언론 자신이 바로 그 어둠을 드리우고 있는 건 아닌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는 ‘굽히지 않는 펜’이라는 이름의 언론자유 조형물이 서 있다. 하늘을 향해 꼿꼿이 치솟은 그 거대한 펜은 한국 언론자유 운동의 상징물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언론의 현실에서, 그 펜 앞에서 시민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한국언론의 자유는 누구의 자유인가? 

    언론은 과연 그 자유를 감당할 수 있는가?


    2026년 신오적新五賊 언론이 답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다.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의 민낯_남기업 (시사時思 / 흑표 176~181쪽)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의 민낯



    필자소개: 남기업(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전 국민 주거권과 토지공개념 실현이 주된 관심사이다. 21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 직속 기본사회위원회 기본주거교통분과 위원장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는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2023, 공저), 『불로소득 환수형 부동산 체제론: 부동산 공화국 탈출하기』(2021) 『아파트 민주주의』(2020) 외 다수가 있다.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이란 말이 있다. 공화국 앞에 ‘민주’가 아니라 ‘부동산’이 붙은 까닭은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이 국민 일반이 아니라 고가 부동산을 과다하게 소유한 개인과 법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운데에 ‘불로소득’이란 용어가 붙은 이유 역시 부동산을 과다하게 보유한 소수의 개인과 법인이 노리는 것이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불로소득’은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평균 수익을 초과하는 이익이다.

     

       그러므로 불로소득이란 용어가 사회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집과 건물을 알아보러 다니는 행위 등은 개인적 관점에서는 노력이지만 사회적 관점에서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런 행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GDP가 1도 증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비생산적 경제활동, 좀 더 그럴싸한 말로 ‘지대추구 행위rent seeking behavior’라고 부른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불로소득은 얼마나 발생하는 걸까? 추산에 의하면 2007년 161.4조 원, 2010년 216.9조 원, 2018년 315.9조 원, 2020년 436.3조 원, 2021년에는 무려 461.6조 원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2022년 415.3조 원, 2023년 344.8조 원, 2024년에는 334.9조 원으로 줄었다. 중요한 건 결국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했거나 적게 소유한 개인과 회사가 노력해서 벌어들인 소득이,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개인과 회사로 어마어마하게 이전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 무주택자가 집을 빌리거나 살 때, 부동산이 필요한 회사가 건물 혹은 땅 등을 사거나 빌릴 때 비용이 증가한다.


       그러면 한국사회의 땅과 집 소유 현실은 어떨까? 소유 불평등은 매우 심각하다. 땅을 소유하지 못한 가구는 2024년에 37%나 되었고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무려 0.914 ― 면적 기준으로 완전평등이 0이고 완전불평등이 1 ― 나 된다.1)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43%가 넘으며, 집이 아닌 비닐하우스·쪽방·고시원에 사는 가구가 50만 가구, 반지하·옥탑방 등 주거취약 계층은 100만 가구에 육박한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부동산투기를 유발한 제도에 있다. 대표적으로 현행 부동산 세제가 그렇다. 일단 부동산 기대수익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보유세 실효세율이 너무 낮다. 2000년대 이후로 보유세 실효세율은 전진과 후퇴를 거듭해 0.13%에서 0.21%까지 오르내리다가 2024년 현재 0.147%에 이르고 있다. 이는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미국의 5분의 1에서 6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수치이다. 보유부담이 약하니 투기수요를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시세차익에 부과하는 양도소득세는 1주택은 12억 원까지 비과세이고 12억 원을 초과해도 오래 보유하고 있으면 최대 80%까지 감면하고 있으며, 다주택자 중과는 중과와 유예를 반복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0년간 양도차익 10억 원에 대한 세 부담은 0.5~6.1%인데 반해 근로소득 10억 원의 세 부담은 11.2~35.0%로 나타났다.2) 생산적 노력인 땀의 가치보다 비생산적 노력인 땅의 가치가 더 존중받아 왔음을 의미한다. 


       부동산 금융은 또 어떤가. 우리나라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부터 금융회사들이 개인의 주택담보대출상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하는데,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1996년 36.4조 원에서 2025년 1170.7조 원으로 지난 30년 동안 무려 32.2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GDP 규모는 5.2배 증가했는데 말이다. 생산적인 부분으로 가야 할 금융이 비생산적인 부분인 부동산 소유권 이전에 흘러 들어가 집값 폭등을 유발한 것이다. 


    이재명정부의 부동산정책 흐름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한 이재명정부는 지금까지 네 번의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취임 직후 대출규제 중심의 6·27대책, 주택공급 대책 위주의 9·7대책, 서울 전역과 수도권 상당 부분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고 대출 규제를 좀 더 엄격하게 한 10·15대책, 그리고 서울 및 수도권에 6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1·29대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정부가 대책을 내놓으면 얼마간은 상승세가 꺾이다가 다시 올라가는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1월 23일부터 달라졌다. 농지투기까지 언급할 정도로 이재명대통령의 부동산 개혁 의지는 포괄적이었고, 부동산 문제의 핵심이 불로소득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에둘러 가지 않고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 탈출’을 천명하면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유예 종료를 선언하고 중요한 보유세 강화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강한 신호도 보냈다. 다주택자 대출연장도 종료할 것을 암시했고 고위공직자 중 다주택자는 부동산정책 업무에서 배제할 것도 지시했다. 그 결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1월 26일(0.31%) → 2월 16일(0.15%) → 3월 2일(0.09%) → 3월 16일(0.05%)로 둔화됐고, 2025년에 급등했던 강남 3구와 한강 벨트 지역 아파트 가격도 하락세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보유세 강화에는 신중하다.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잠깐 미국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보유세 강화가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

       미국은 지역별로 보유세 실효세율이 다른데, 흥미롭게도 보유세 부담이 높은 지역일수록 주택가격 변동성이 낮게 나타난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높으면 장기보유 비용이 높게 발생하기 때문에 단순한 시세차익 기대만으로 장기보유하는 전략이 매력적이지 않다. 따라서 투기수요가 적어지고 가격 변동성도 낮아진다. 반대로 보유세가 낮은 지역에서는 장기보유 비용이 적어 투기수요가 쉽게 유입되고, 상승기에는 과열, 하락기에는 급락이 나타나 변동성이 커진다.


       실증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각 주와 대도시를 대상으로 2005~2014년 재산세(보유세) 실효세율과 주택가격 변동성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재산세율이 높을수록 가격 변동성이 낮아지는 음negative의 관계가 확인됐으며, 이는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적 효과로도 나타났다.3) 즉 보유세는 투기수요를 차단하고 가격의 급등과 급락을 모두 완화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 전체 금융 조건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기준금리나 대출 등 금융 조건이 유사함에도 보유세 실효세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부동산 가격변동성이 낮다는 것에서 우리는 세제가 부동산투기에 가장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세제는 투기에 매우 취약한 구조이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오래 보유할수록 보유세와 양도세 혜택이 커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상태에서 금융규제에만 집중하면 지금까지 보였던 것처럼 잠시 하락하다가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이재명 정부는 보유세 강화에 대한 장기목표를 세우고 점진적으로 보유세를 강화하면서 금융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부담가능한 주택을 꾸준히 공급해야

       그러면 신규주택 공급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주요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현재 주종을 이루고 있는 아파트 분양가가 너무 비싸다. 서울 주요지역에 공급되는 신규분양 아파트는 32평형이 최소 15억 원이 넘을 것이고, 고양 창릉과 같은 3기 신도시의 경우에는 10억 원은 족히 될 텐데, 분양가가 이렇게 높으면 청약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목돈이 준비된 사람이나 대출을 크게 일으킬 수 있는 고소득자로 제한될 것이다. 분양가 자체가 높은 진입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개혁으로 주택가격이 하향 안정화 국면에 들어가면 지금과 같은 방식의 분양이 외면받을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과거처럼 분양가보다 시세가 비쌀 뿐만 아니라, 시세가 계속 올라가지 않고 분양가 아래로 하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생각해 보면 2억 5천만 원에서 4억 원 사이에 분양하고 그 가격이 유지될 수 있도록 설계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회사의 부동산투기도 강력 차단해야

       부동산투기는 개인(가계)만 하는 게 아니다. 경제활동의 핵심 주체인 회사의 부동산투기는 개인 못지않다. 우리나라 법인(회사)의 토지 순취득(=매입-매각)을 위한 지출이 OECD 평균보다 무려 9배나 많은 것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법인(회사)은 왜 이렇게 많은 돈을 토지에 투입하는 걸까? 기대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법인이 보유한 토지의 수익률은 보유세와 양도세에 의해 좌우되는데, 대표적인 법인 보유 토지인 공장용지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에도 못 미치고, 양도차익은 법인세에 포함돼 처리되기 때문에 부담이 매우 낮다. 여기에 금융권이 법인에 대해 부동산담보대출을 비교적 쉽게 제공하는 점까지 고려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토지매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기업이 국민경제의 핵심 주체라면 기업의 부동산투기를 차단할 수 있는 세제개혁은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AI 주도 기술경제로의 전환’이라는 정책목표도 쉽게 달성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망국으로 몰고 간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에서 키워드는 ‘불로소득’이다. 그러므로 세제를 통해서 불로소득이라는 투기의 먹잇감을 치워버리면, 즉 투기용 보유가 하나 마나 한 일이 되어버리면, 또한 시세차익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보유 진입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면, 그렇게 법인도 불로소득을 누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면, 그리고 여기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화 시대’가 진행되면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 탈출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편집자주]

    01_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는 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낮고,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크다.


    02_최서윤, 〈與 보유세 좌담회…“세제 개편 없이 집값 안정 어려워”〉, 《아시아경제》, 2026.2.24.


    03_ Tigran Poghosyan, 「Can Property Taxes Reduce House Price Volatility? Evidence from U.S. Regions」, 『IMF Working Paper』 WP/16/2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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