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대략보기
재창간 2호, 통권 207호 | 2025 여름호 | |
발행일 | 2025.07.01 |
출판사 | 사상계미디어 |
목차 |
명예발행인 장준하의 사상계 헌장(1956년 4월호)_장준하 권두언: 전환과 이음, 공화와 공생_조성환 사상계 옛글 갈무리: 「김철의 혁신정당은 가능한가」_김누리, 이정하 |
특집: 불이야! 不二也! | |
공화의 촛불-대담한 대담 1+2+3+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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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혼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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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산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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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등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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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상을 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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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자연을 짓다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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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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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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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생태 New&O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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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과 이음, 공화와 공생
조성환(본지 편집주간)
하나,《신新사상계》의 정체성(1)
《개벽》에서 《사상계》로
《사상계》는 1953년 4월 1일에 장준하가 창간한 월간 종합지로, 1970년에 김지하의 풍자시 〈오적〉을 실은 것이 문제가 되어 강제 폐간될 때까지, “광복 이후 한국 지성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저술”로 꼽히고 있다. 발간과 동시에 창간호 3천 부가 매진되었고, 절정기인 1960년에는 412면 두께로 9만 7천 부가 팔릴 정도로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2) 한편 한국사상사라는 지성사적 흐름에서 보면,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를 지향한 《개벽》의 뒤를 이으면서, 냉전 시기에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과제에 응답하여 사상운동을 전개한 종합지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56년 4월호 《사상계》에는 맨 앞에 다음과 같은 〈사상계 헌장〉이 실려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사회를 이룩해야 하는] 이 지중至重한 시기에 처하여 현재를 해결하고 미래를 개척할 민족의 동량은 탁고기명託孤寄命의 청년이요, 학생이요, 새로운 세대임을 확신하는 까닭에 본지는 순정무구한 이 대열의 등불이 되고 지표가 됨을 지상의 과업으로 삼은 동시에 종縱으로 5천 년의 역사를 밝혀 우리의 전통을 바로잡고 횡橫으로 만방의 지적소산知的所産을 매개하는 공기公器로서 자유·평등·번영의 민주사회 건설에 미력을 바치고자 하는 바이다.
즉 《사상계》의 목표는 “전통을 이어서 미래를 개척할 새로운 세대를 길러내어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지구지역적 종합지: 《신(新)사상계》의 정체성
《사상계》가 폐간된 지 55년, 우리에게는 새로운 문제상황이 발생했다. 국내적으로는 압축적 근대화가 낳은 양극화와 서열화가, 지구적으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생태위기가 그것이다. 이러한 지구지역적 다중위기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국시로 삼아온 근대화라는 테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각자도생’으로 대변되는 지나친 경쟁주의, 서울 중심주의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 계엄과 탄핵을 둘러싼 이념 대립 등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불안을 드리웠다. 전 세계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기후변동과 자연재해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진지하게 묻고 있다. 과연 인류가 불안정한 지구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최근에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괴물 산불’은 이러한 물음이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님을 말해준다.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못한 산림정책이 비판을 받고 있듯이, 이제 우리는 ‘근대 국가 건설’이라는 패러다임에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지구적이면서 지역적인 다중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구학과 지역학을 아우르는 포괄적 시야가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장원 편집인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50여 명을 찾아다니며 《사상계》 복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들이 편집위원이 되어 복간에 힘을 실어주었고, 여기에 조기수 인쇄인과 4명의 청년이 실무팀으로 가세하여 세대 간 조화를 이루었다. 실무를 맡은 청년들은 편집부주간 이정하와 장윤석, 홍보팀장 유다님, 디자인팀장 양애진이다. 이들이 6개월 넘게 일심동체가 되어 《사상계》 재창간 작업에 매진하였고, 마침내 지난 4월 1일, 창간 72주년 기념특별호로 새로운 《사상계》가 탄생하였다.
전환과 이음: 《신新사상계》의 철학
복간 《사상계》의 화두는 전환과 이음이다. 인류가 당면한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개발 위주의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모심과 돌봄을 실천하는 행성적 사고로의 전환이 요청된다. 동아시아에서 자주 회자되었던 ‘경천애인敬天愛人’은 인류공동체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지구를 외경하는 영성과 공동체를 돌보는 사랑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오만해졌고 자연에 대한 외경은 상실되었다. 학문은 영역별로 쪼개졌고, 전체를 보는 눈은 희미해졌다. 국토는 서울과 지방으로 양분되었으며, 세대는 한자와 영어로 단절되었다.
이제 근대화 과정에서 분할되고 균열된 여러 겹과 층들을 다시 ‘잇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치 『소년이 온다』가 죽은 자와 산 자, 과거와 현재를 ‘실’처럼 이어 주었듯이, 전통과 현대를 잇고, 세대와 세대를 잇고, 서울과 지방을 잇고, 학문과 학문을 잇고, 이론과 현장을 잇는 실 역할을 하는 것이 《사상계》의 복간 정신이다. 이러한 ‘전환’과 ‘이음’의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서 책의 형태를 동전의 양면처럼 ‘일책이권一冊二卷’으로 디자인하였다. 흰 표지는 양권陽卷이고, 검은 표지는 음권陰卷이다. 마치 태극 문양처럼 음과 양이 어우러진 형태이다. 그리고 양권에서 음권으로 넘어가려면 책을 ‘돌려야[轉換]’ 한다. 다른 세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관점의 전환轉換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역과 청년: 《신(新)사상계》의 지향
이러한 전환과 이음의 철학을 청년과 지역을 중심으로 구현해 나가자는 것이 《사상계》의 지향이다. 청년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미래를 개척하자”라는 「사상계 헌장」의 정신을 잇는 것이고, 지역에 방점을 두는 것은 생태적 가치와 균형의 철학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대 계승적이고 공동체적인 지향성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도 이미 실천되고 있다. 지난 계엄령 사태 때 응원봉을 든 2030 여성들이 보여준 ‘힘’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세대와 세대가 계승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기부하는 선행들은 아직 우리 사회에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각 지역에서 우후죽순으로 일어나고 있는 지역살림운동, 생명평화운동, 생태시민교육은 지역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가능성과 저력들을 발굴하고 조명하여 기후변화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사상계》의 꿈이다. 다만 이제 막 출발한 《사상계》는 아직 여린 ‘묘목’과 같다. 이 묘목은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사회적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다. 《사상계》가 소수의 편집위원이나 집필자들에 한정되지 않는, 《사상계》의 가치와 철학에 공감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심포이에시스sympoiesis’의 종합지가 되었으면 한다.
둘, 불화에서 공화共和로
이상의 철학과 비전을 바탕으로 재창간 2호(통권 207호)의 화두는 ‘불이야’로 잡았다. ‘불’은 문명의 중요한 원동력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가이아 같은 존재이다. 최근에 2023년 동해안 산불로 집을 잃은 한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다. 인명 피해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허탈함과 무력감에 자살 충동을 여러 번 느꼈다고 고백하였다. 이번에 발생한 영남 산불은 규모도 더 큰 만큼 정신적, 물리적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리라 짐작된다. 한편 눈을 해외로 돌리면 연일 전쟁 뉴스가 보도되고 있는데 ‘불바다’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인간이 증오하고 화를 낼 때 ‘불’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불화不和가 불화火를 일으키는 것이다. 괴물 같은 산불도 인간과 자연의 불화不和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전쟁이 인간과 인간의 불화이고, 산불이 인간과 자연의 불화라면, 기후변화는 인간과 하늘의 불화이다. 이런 천지인天地人의 불화火를 멈추기 위해서는 불화不和를 공화共和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집 기획의 ‘공화의 촛불’과 ‘문명의 산불’은 이런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공화의 촛불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듯이 ‘공화共和’는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이다. 하지만 정치 담론에서는 항상 ‘민주’가 주인공이었고 ‘공화’는 뒷전이었다. 그렇다면 ‘민주화’ 다음의 과제는 ‘공화共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신임 대통령의 연설에서 ‘공동체’가 강조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공화의 촛불’에서는 이 시대의 네 가지 서로 다른 생각과 비전을 대담 형식으로 실었다. ‘보수원로’와 ‘진보원로’, ‘젊은 정치인’과 ‘MZ세대’가 각자의 생각을 다 말하는 ‘대담한 대담’이다.
일찍이 민세 안재홍(1891~1965)은 한반도의 정치 이념을 ‘다사리’라는 개념으로 제시하였다. 다사리는 ‘다 사뢰게 한다’와 ‘다 살리게 한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순우리말이다. ‘다 사뢰게 한다’는 ‘다 말하게 한다’라는 뜻으로, 정치란 ‘모두가 말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재홍은 이러한 다사리 정치의 제도적 기원을 신라의 화백和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이번에 기획한 ‘공화의 촛불’은 이러한 다사리 정치 이념을 대담 형식으로 구현한 것이다.
문명의 산불
‘공화의 촛불’에 이어지는 ‘문명의 산불’(생태계)은 이번 ‘괴물 산불’의 발생을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과 숲이 공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관해서 전문가들에게 지혜를 구했다. 백년숲사회적협동조합의 한새롬 이사장은 한국과 독일의 산림 협업 사례인 울산의 ‘한독숲’을 소개하면서 ‘숲의 민주주의’ 개념을 제시한다. 하인리히뵐재단의 노건우 생태담당관은 ‘어머니의 유언’을 묻지 못했던 자신을 질책하면서 “왜 우리는 선제적으로 나서지도, 깨끗하게 포기하지도 못하는가?”라고 묻는다. 강원대학교 정연숙 명예교수는 산불 이후의 복원 방안에 대하여, 가급적 인간의 인위적인 개입을 줄이고 숲의 자연 복원 능력에 맡길 것을 권하고 있다. 산림청장을 역임한 건국대학교 김재현 교수는 중앙 정부의 산불 대응 시스템과 지자체장의 초동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형산불이 진화된 이후에 정부, 정당, 전문가, 피해자 등이 참여하는 ‘진상조사 및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강은빈 대표는 최근에 강원도 삼척에 지어진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인간과 자연을 이어 주는 해송림이 벌채 위협에 처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삼척 주민들과 함께 해송림을 지키고 싶다는 다짐을 한다.
사상의 혼불
‘사상의 혼불’(사상계)에서는 《사상계》 복간을 기념하여 《구 사상계》를 상징하는 두 명의 사상가, 함석헌과 김지하를 청년과 원로의 시각에서 각각 조명하였다. 먼저 청년의 시각을 소개하면, 한국철학 연구자인 한송희는 “정치는 한 사람의 변화나 제도의 개혁만으로는 변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안에서 ‘참’을 발견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라고 하면서, 이와 같이 참을 깨달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무념의 정치’야말로 함석헌의 메시지라고 주장한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이희연은 ‘찢어진 사람 김지하’(1990년)에 공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김지하에게 있어서 철학과 실천이 ‘찢어진’ 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김지하를 비롯한 많은 생명운동가들이 살림과 밥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생명 운동의 현장에 가면 ‘밥 짓는 남성’을 본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김지하가 말하는 음개벽(=여성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는 것)은 ‘손수 밥 짓는 할아버지’가 도래하는 시대라고 하면서 글을 맺는다.
다음으로 원로의 의견을 들어보면, 한남대학교 김조년 명예교수는 함석헌이 꿈꾼 세상은 “천하에 적은 없다”라는 평화 사상을 바탕으로 모두가 같이 사는 공생의 세상이라고 소개하면서, 그가 탈국가주의를 주창한 것은 그런 세상을 정치가나 지배 계층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은 씨ㅇ·ㄹ들의 연대”를 통해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 독립기념관장인 김삼웅은 함석헌을 “가장 먼저 박정희의 쿠데타를 비판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사상적으로는 간디주의, 아나키즘, 소로주의, 풍류정신 등을 융합한 “야인 정신의 실천가”로 자리매김한다.
마지막으로 청년과 원로의 중간에 위치하는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는 1974년 김지하가 사형선고를 받는 장면에서 2022년 그의 추모 행사에서 미야타 마리에와의 만남에 이르는 48년의 역사를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그리고 있다. 미야타 마리에는 1971년에 김지하의 시집을 처음으로 출판하여 일본에 알리고, 김지하 구명 운동을 전개한 언론인이다. 김지하가 단지 한국만의 김지하가 아니라 ‘한일의 김지하’,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김지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글이다.
셋, 공동체에서 공생체로
이번 호의 표지 시는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호모 심비우스의 세상」이다. ‘호모 심비우스’는 ‘공생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공생하는 지구 Symbiotic planet』(1998)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인간이든 지구이든 생물학적 차원에서 보면 하나의 ‘공생체symbiont’라는 의미이다. 린 마굴리스와 제임스 러브록이 지구에게 ‘가이아’라는 여신의 이름을 붙인 것도 지구가 하나의 공생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체가 사회과학적 개념이라면 공생체는 생물학적 개념이다. 그런데 공동체는 ‘다문화공동체’나 ‘가자지구 공동체’와 같이 문화나 이념으로 구분되는 세계이다. ‘남한공동체’나 ‘북한공동체’라고는 할 수 있지만, ‘남북한공동체’ 또는 ‘한반도공동체’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공동체는 그것이 ‘지구’ 차원으로 확장되지 않는 이상 배타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태생적으로 민족이나 종교, 지역이나 혈연 등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연의 세계에는 구분이 없다. 물이나 바람, 새들은 남북한을 자유롭게 오갈 것이다. 자연은 공동체의 세계가 아니라 공생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특집 기획의 제목인 ‘불이야’는 한자로 바꾸면 ‘不二也’이다. ‘불이不二’는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할 때의 ‘불이’로, ‘둘[二]이 아니다[不]’, ‘다르지[異] 않다[不]’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위기와 갈등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다름’만을 강조한 데서 생긴 것이 아닐까라는 성찰을 담고 있다. 확실히 세계는 다양하고 견해는 다르지만, 그 바탕에는 근원적으로 통하는 ‘공생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찍이 신라의 원효 스님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不一而不二]라는 존재론을 설파한 적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완전히 같지도 않고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는 뜻이다. 같음만을 강조하면 ‘공동체’ 논리에 빠지기 쉽고, 다름만을 강조하면 ‘각자도생’의 시대가 될 것이다. ‘같으면서도 차별화된common but differentiated’ 눈으로 세상을 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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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절은 《종교와 평화》 200호(2025.05.02.)에 실렸던 필자의 「《사상계》 복간의 사회문화사적 의미」를 약간 수정한 것이다.
(2)김려실 외, 『사상계, 냉전 근대 한국의 지식장』 역락, 2020, pp. 17~26 참조.
공화의 촛불–대담한 대담
MZ세대 문명대담
우리는 어떻게 무너지는 세계를 살고 있나
사회: 양애진(커뮤니티 디자이너)
농촌에서의 공동체 실험부터 여성 모험 커뮤니티, 굿과 축제를 통한 리듬 공동체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실험하고 기록한다.
대담:
- 임명묵(작가): 대학교에서는 중동지역학과 소련사를 공부했다. 서울과 고향 소도시를 오가며 살아온 경험으로 ‘아시아적 관점’을 추구하고 있으며, 8살 때부터 거주한 온라인 공간을 제2의 고향처럼 생각하며 온라인이 한국과 세계의 청년층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임정희(한반도 파이니어 그룹 공동대표, 창립자): 싱크탱크에서 외교안보 분야 연구자로 활동하며, 미래의 복합위기 해결을 위한 청년 세대 연구 네트워크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의 다양한 미래세대 청년리더들과 연대하여 평화로운 한반도, 지구 공동체를 꿈꾼다.
- 전범선(가수 겸 작가):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신명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다. 바람과 흐름으로 모두가 하나 되는 날을 꿈꾼다. 《사상계》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 함은세(소셜 디자이너): 삶을 기획하고, 사람을 연결하고, 세상과 작당모의하는 사람. 정치, 청년, 교육이라는 키워드를 중점으로 글과 말을 통해 사회와 소통한다. 현재 국내외 청년들과 함께한 에세이 인터뷰 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사상계》에는 편집기획위원으로도 참여 중이다.
일시: 2025년 4월 25일 오후 5시
장소: 풀무질
여는 글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민주’는 자주 이야기되는 반면 ‘공화’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한 몸의 반쪽이 비어 있는 듯합니다. 공화란 대체 무엇일까요? 어쩌면 ‘공화’는 단지 체제의 이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현 시국을 관통하는 다섯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각자의 감각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잔해] [감각] [틀] [함께] [불씨]
1. 잔해: 우리에게 지금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양애진 | 지금 우리는 단순히 한 정권의 끝이 아니라, 어떤 시점의 끝에 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문명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자리는 어느 지점일까요?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끝났다고, 혹은 끝날 것이라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함은세 | 저는 세상이 지나치게 혼돈 속에 있어서 개인의 삶에 신경 쓰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 ‘계엄 불면증’을 앓았다고들 하잖아요. 그처럼 무너져 내린 것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개인이 회복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 느낌이에요. 다들 무기력해지고, 지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 삶을 잘 존속해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한데 그러려면 일단 사회가 돌봐주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많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도 내 삶이 아닌 주변에만 신경 쓰는 시기를 오래 겪었어요. 특히 2016년 탄핵 전후로 이 사회 공동체가 어떤 파멸의 위기로 진입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의 삶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외부적인 것들에 집중하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사회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잘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지점들이 현재는 많이 소멸되었고, 그 사실이 역설적으로 개인주의를 불러오지 않나 싶어요. 제 또래 친구들을 보면 정치 고관여층과 완전 무관심층으로 확연하게 분리가 돼요. 어느 지점을 넘게 되면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지는 거죠. 피곤하니까. 그리고 직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거기에서 비롯된 무기력, 우울감에 잠식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아요. 저도 이번에는 시위 현장에 두세 번밖에 안 갔어요. 너무 힘들어서……. 이걸 마주하는 게 스스로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오히려 지난 박근혜 퇴진 집회 때는 중학생이었는데도 1차부터 26차 집회까지 단 한 번도 안 빠지고 다 나갔단 말이에요. 교복 입은 채로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과정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요. 오히려 더 알면 알수록, 더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하나라도 조금 떼놓고 싶은 마음이에요. 변한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좀 씁쓸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 쉴 구멍이 없으니까……. 임명묵 | 여기서 핵심은 “나를 둘러싼 층위가 있는가”, 즉 내 주변, 지역사회, 국가, 세계, 자연까지 포함한 그 확장된 층위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층위가 존재할 때, 내 기력을 바쳐서라도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결국 내 삶을 회복시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현장으로 나가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나갔을 때, 내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동시에 나 자신도 회복되는 경험을 하게 되죠.
권헌익의 『Spirit Power』라는 책을 보면, 한국의 종교와 냉전 사이의 관계를 다루면서 새마을 운동 시기 한 무당이 겪은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와요. 그 무당이 말하길, “새마을 귀신에 씐 사람들이 신당에 와서 나를 괴롭혔다”라는 거예요. 새마을 운동은 분명히 국가 주도의 폭력성과 동원성이 있는 운동이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운동이기도 했어요. 예를 들면, 식목일에 나무를 심으며 한국의 농촌 환경과 자연이 점점 회복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체감할 수 있었거든요. “나 혼자 잘 살 수 없다”라는 믿음, “우리 공동체가 잘 돼야 나도 잘된다”라는 믿음이 있었던 거죠. 민주화 운동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박근혜 탄핵을 지나 윤석열 탄핵 국면까지 오면서, 그 믿음이 끊어진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모두가 에너지를 소진했죠. 8년 전만 해도 “나를 소진하더라도 공동체가 회복된다면 결국 나도 회복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품고 나섰는데, 지금은 오히려 세계가 더 나빠졌다는 감각이 강해요. “저런 미친 짓을 하니까 나가긴 나가야겠는데, 내가 나간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회의감이 들죠. 기존의 구호나 상징들에 대한 믿음이 끊긴 시대, 그게 지금의 2025년이 아닐까 싶어요. 이제는 ‘개인의 참여가 개인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피드백 고리’를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 그걸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고 생각해요.
함은세 | 맞아요. 지금의 사회운동은 너무 소모적이에요. 자신이 사라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랄까? 얼마 전에 석사를 마친 친구가 정당 정치에 참여한 청년들의 삶을 연구했어요. 보통 거대 양당에 고관여하는 청년들은 당원이 되거나 여러 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죠. 그런 청년들을 인터뷰해 봤더니, 정당에 참여하고 나서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더 낮아졌다는 거예요. 사실 청년기에 정당 정치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10년, 15년 동안 소위 ‘의자만 나르다’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면 더 이상 ‘청년’도 아니게 되죠. 그렇게 되면, 어떤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하는, 정체성도 역할도 불분명한 상태에 놓이게 돼요. 정당을 나와도 정치인도 아니고, 다시 정치를 하고 싶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정치가 싫지 않은 사람’ 정도가 되어버려요.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정당 안에는 정말 많아요. 청년위원회나 대학생위원회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다가 결국 명확한 직책 하나 없이, 양산형 명함과 상장 몇 장만 남기고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 안에서 ‘간택’되듯이 뽑힌 100명 중 1명쯤이 보좌관이 되거나, 의원실에 들어가고, 그중 일부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저도 명묵 님 말씀에 정말 공감해요. “전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왜 하느냐”라고 묻는다면, 결국 내 회복이 목적이 되는 거죠. 그 속에 들어가서, 나 스스로가 함께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 내 삶이 치유된다는 느낌. 그런 감각이 예전엔 있었는데, 요즘은 정말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양애진 |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이 현재 범선 님이 하고 계신 활동들과 연결될 것 같아요.
전범선 | 저는 지금 우리가 딱 그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최소 250년, 혹은 2,500년, 더 나아가 5만 년짜리 패러다임의 변곡점들이 겹쳐 있는 시기라고 봐요.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는 유례없는 속도로 공동체가 파괴되는 경험이 벌어졌고, 그 과정을 우리는 직접 살아내고 있죠. 《사상계》라는 잡지의 폐간 역시 그 파괴의 시간을 증명하고 있고요. 저는 그래서 《사상계》의 복간이 단지 잡지 한 권의 부활이 아니라, 우리가 지난 55년간 잃어버린 시간— 즉, 박정희가 《사상계》를 폐간하면서 시작된 ‘미신 타파 운동’과 ‘새마을 운동’의 시간 —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다시 되짚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이 운동들은 겉으로는 서구화·근대화·산업화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상 유신이라는 독재 패러다임의 연장이자 문명 전환의 일방적 실행이었어요. 대한민국에게 이 시간은 55년이지만, 지구촌 전체로 보면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 이후 약 250년에 걸친 하나의 문명 패러다임, 즉 대서양 혁명 체제였던 거죠.
저는 이걸 하나의 운영 체제(OS)라고 봐요. 이 OS는 미국과 프랑스 혁명의 ‘아버지들’이 설계했고요. 그 핵심은 복잡하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편 가르고 싸워서 이기면 진보한다”라는 거예요. 그 방식 자체를 저는 ‘죽임의 문명’이라고 불러요. 나와 너를 가르고, 좌파와 우파를 가르고, 싸움에서 승리하면 역사가 전진한다고 믿는 방식. 그게 곧 면죄부가 되고, 정의가 되는 체계였죠. 이런 구호들이 적어도 우리 윗세대, 86세대 운동권까지만 해도 꽤 유효했어요. 왜냐하면 그때까지는 실제로 목숨이 달린 싸움이었거든요. 일제가 쳐들어와서 죽이고, 공산당이 쳐들어와서 죽이고, 경찰이 들이닥쳐서 잡아가고 고문하고, 실제 죽임과 폭력이 작동하던 시기였으니까요. 죽임을 맞닥뜨렸을 때 죽임으로 보복하고 싸우는 것은 자기방어이자 응당한 조치였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는 이 죽임의 문명은, 당장 누가 우리에게 칼을 들이미는 타살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자살이잖아요. 이건 이제 우리 정신 자체가 분열된 상황이에요. ADHD에 걸리거나 조현병에 걸리거나, 그런 상태에서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누구랑 싸우는가?” 하는 질문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악이 분명했어요. 타자화된 대상이 있어서 상대방을 끌어내리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죽음의 굿판을 벌여도 신명이 날 수 있어요. 그게 일제든, 빨갱이든, 독재든, 나와 내 식구를 죽인 존재들이 분명하니까요. 그때는 전쟁도 유효했어요. 신명 나게 투쟁할 수 있었던 거예요. 동학혁명, 독립운동, 3·1 운동, 민주화 운동 — 그땐 힘이 났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세대가 맞닥뜨린 건, 그 모든 공동체가 붕괴한 상태예요.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 자체가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것. 그게 기후위기잖아요. 우리는 자연을 정복했다고 믿었는데, 막상 싸우려 보니—어? 자연은 싸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네? 우리가 자연의 일부네? 우리가 지구의 일부네? 250년 전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때 사람들이 꿈꿨던 건 “자연을 정복해서 우리가 승리하자”라는 거였는데, 지금은 알게 된 거죠. 이건 지는 싸움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 인수공통 감염병, 기후·생태 위기, 인공지능, 미·중 경쟁…… 이 모든 게 이길 수 없는 싸움인 거예요.
더 이상 근대 문명의 이분법이 유효하지 않은 걸 알게 된 상황에서, 그럼 이제는 새로운 피아彼我 구분, 새로운 자아 형성이 필요한데, “나는 누구고, 우리는 누구고, 우리 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기존 정치가 전혀 답하지 못해요. 좌우, 진보·보수, 여전히 “나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이런 얘기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한테 주어진 정체성은 그게 아니에요. 진보도 보수도 아니고, 청년이에요. 우리는 진보도 보수도 싫어요. 왜 계속 진보하거나 보수해야 돼요? 왜 계속 변증법적으로 싸워야 해요? 우리는 그냥 공동체예요. 대한민국이라 해도 되고, 인류라 해도 되고, 생명이라 해도 되고, 지구, 우주라 해도 돼요. 우리는 하나의 몸이에요. 공동의 체體예요. 이제 그걸 회복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문명의 패러다임 안에선 그 공동체를 제시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여전히 인간만을 인정하거든요. 인간 중심의 사회예요. 그러니까 인공지능도 못 받아들이고, 왕손이(강아지)도 못 받아들이고, 그저 물건 취급하잖아요. 그게 바로 지금 시스템 에러, 운영 체제 자체의 오류인 거예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그냥 OS 안에서 버그 고치는 게 아니라 아예 OS 자체를 갈아치우는 운동이어야 해요. 그런데 계속 기존 시스템 안에서 “버그 좀 고치자”, “업데이트하자” 이러고 있잖아요. 그런다고 뭐가 달라졌나요? 대통령 몇 번 감옥 보냈고, 민주화도 몇 번 했고, 혁명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 이 법 고친다고 뭐가 바뀌나요? 대통령 선거를 해도 마찬가지예요. 86세대한텐 이게 ‘승리’일 수 있어요. ‘검찰 개혁’이니 뭐니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재명이 되든 누가 되든 결국 같은 OS 위에서 돌아가는 거잖아요. 우리는 새로운 OS가 필요해요. 저는 그게 디지털 혁명의 핵심이라고 봐요. 산업혁명과는 완전히 다른, 디지털 문명의 패러다임 안에서 설계된 새로운 운영 체제.
우리를 ‘청년’이라고 부르는 분들은 잘 이해 못하실 거예요. 우리는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불리지만, 실제로는 ‘디지털 원주민’이에요. 그리고 ‘메타버스’라는 신대륙에서 개척 중인 존재들이죠. 장준하 선생님이 지금의 시대에 《사상계》를 만들었다면, 반드시 디지털로 했을 거예요. 지금 우리 세대는 디지털 패러다임에 맞는 새로운 OS를 만들어야 해요.
그런데 기성 정치권에서는 나올 수가 없어요. 미국 혁명이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에서 일어났지, 영국 왕실 안에서 벌어진 게 아니잖아요. 프랑스 혁명도 마찬가지고. 신대륙에서 새로운 흐름이 나오니까 구질서가 무너지고, 다른 곳에서도 영향을 주는 거죠. 지금 우리는 기존의 서구 근대성에 기반한 산업 문명이 자폭하는 장면을 보고 있어요. 트럼프 보세요. 지금 한바탕 자폭하고 계시잖아요. 우리는 그 잔해를 보고 있는 세대예요. 그런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잔해를 치우는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공산당이 무서워요”, “독재가 싫어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분들에게 건네야 하는 것은 해원과 상생의 메시지예요. 그게 정치권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할은 결국 《사상계》를 이어가는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아닐까 싶어요.
임정희 | 저도 그 ‘잔해’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물론 다른 나라들도 갈등이나 폭력이 있겠지만, 한국은 유독 갈등, 화해, 폭력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그로 인한 피로감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요. 이 사회문화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쭉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합방, 독재, 냉전, 민주화까지 너무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그게 제대로 화해되지 못한 채 쌓여왔어요. 사회의 무언가가 부서졌다면 정리를 하든가, 아니면 땅을 다지고 새로 짓든가 해야 하는데, 그런 정리 없이 파편 위에 또 뭔가를 덧대고, 그 위에 또 무너지고……. 그게 반복되면서 잔해 위에 또 잔해가 켜켜이 쌓여온 것 같아요. 너무 많은 것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사회. 제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는데, 처음 들었던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수업에서 민주화 운동과거사를 배우면서 늘 이 질문이 들었어요. “왜 학생들이 싸우고 세상을 바꾸려고 했는데 결과는 그대로였을까?” 교수님 말씀은, 일제 청산도 현실적 이유로 실패했고, 협력자였던 경찰들이 다시 제도 안에서 권력을 잡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꾸려고 해도, 기존 권력은 끈질기게 남아 있고, 우리는 계속 배제당하는 거죠.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그런 감정이 또 들었어요. 밤새 눈을 맞으면서 앉아서 광장을 지킨 것은 시민들이었는데, 또다시 우리는 배제된 채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지겠구나. 별반 다르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좌절감이 몰려왔죠. 사실 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에 예전부터 소위 정치외교학과라 하면 “너 정치할 거야?”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치는 절대 안 해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박근혜 탄핵 당시, 그 촉발점이었던 이대에 있었는데요. 그때도 저는 촛불을 들고 나가야 하나 망설였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감각보다는 이렇게 하면 제적을 당하거나, 이렇게 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무력감이 더 컸어요.
그런데 이번 계엄이 딱 터졌을 때는 망설임 없이 택시를 타고 국회 앞으로 갔어요. 그때 심지어 회사에서 녹취록 작업 중이었는데도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엔 “그래, 지금은 가야 한다”라는 마음이 더 컸어요. 가보니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 있는 거예요. 심지어 장갑차가 온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맨손으로 막으려고 하더라고요. 두려움을 갖지 않고 일단 나아가게 만들었던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걸 생각해 봤을 때, 분명히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우리 안에 ‘해야 한다’라는 마음, 어떤 심리적인 합의 같은 것이 형성된 게 아닌가. 만약 이번에도 탄핵이 안 됐다면 정말 깊은 무력감에 빠졌겠지만, 결국 탄핵이 되었고, 그게 다음을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 것 같아요.
함은세 | 저는 이 얘기 들으면서 생각난 짤이 있어요. 혹시 그거 아세요? 불타는 피자 짤. 되게 유명한 밈인데, 어떤 드라마 장면이에요. 주인공이 피자를 들고 집에 들어오는데, 집 안이 아수라장이 돼 있는 거죠. 친구들은 쓰러져 있고, 집은 불타고 있고. 자기는 그냥 피자 먹으러 온 건데,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게 파멸로 가 있는 상황이 펼쳐지는 거예요. 그 장면을 보면서, 요즘 전세 사태라든가 전반적인 사회 흐름이 딱 이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들어와 보니까 모든 게 파멸로 가 있고 나만 정상 속에 있었던 거죠.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과 되게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민주화 운동이든, 일제강점기든 그걸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미 존재했던 것들을 우리에게 대입하는 느낌이에요.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책임도 없는데, 무너진 세계를 수습하고 치워야 하는 주체는 나인 거죠. 우리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것이라고 자꾸 착각하는 상황,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미래세대, 청년세대 얘기할 때 항상 “너희가 경제 주체다,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하잖아요. 근데 무너뜨린 건 우리가 아닌데, 치우는 일은 왜 우리가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불만이 내내 있는 거예요. 요즘 제 친구들 보면, 정치에 관심 없던 애들조차도 연금 개혁 얘기를 많이 해요. “내가 받지도 못할 연금인데 왜 더 많이 내야 해?” “언젠가 다 사라질 텐데 왜 이걸 필수로 내야 해?” 국민연금, 건강보험, 사회보험 다 마찬가지예요. 그 제도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단지 그걸 책임져야 하는 게 또 우리라는 현실, 거기에 대한 불만과 피로감이 쌓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 진짜 필요한 건 제도 이전의 마음 치유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갈아 끼우는 것도, 제도 개편도 중요하지만 그건 결국 부품을 교체하는 일이잖아요. 아까 범선 님이 말했던 OS 얘기가 정말 공감됐어요. 그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사람은 계속 관람차처럼, 회전초밥처럼 교체될 뿐이에요. 한 명 타고 돌면 또 한 명 타고, 또 한 명 가고…… 그냥 같은 물에서 계속 낚시를 하는 거죠. 사회는 애초에 판을 바꿀 생각을 못 하게 만들어요. 어려운 일은 우리가 하고, 이익이 되는 일은 당신들이 하고. 치우는 건 우리 몫이고, 다시 만드는 건 기성세대 몫. 우리는 계속 회복되지 않은 채로 치우기만 하는 거예요.
이 구조를 먼저 타파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요. 실제로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80대 아저씨들이에요. 7선 의원까지 하는 사람들. 나는 이 사람을 뽑는 것을 바란 적도 없는데, 당에서 공천해서 나오면, 정당을 보고 뽑아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결국 이 정치 시스템 자체가 나의 선택권이 완전히 결여된 구조예요. 말하자면 아직도 너무 근대적인 시스템을 지속해 오고 있는 거죠. 업데이트 없이, 고장 난 채로 계속. 우리는 그냥 그 잔해 위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쓰레기가 쌓인 집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청소 용역 불러서 한 번 치운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다시 쌓이죠. 그게 우리가 맞닥뜨리는 구조적인 문제고, 결국엔 우리가 말했던 효능감, 회복 능력 같은 것들을 근본적으로 막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저는 가장 슬퍼요.
임명묵 | 제 입장을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조선일보》에 ‘태극기 집회’를 탐방한 글을 썼다가 욕을 엄청 먹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냥 이 풍경이 너무 생경하고 신기해서 실제로 일곱 번 정도 현장에 나가봤어요. 물론 “너는 진심이었기 때문에 일곱 번이나 간 거냐”라고 묻는 분들도 있을 텐데, 어쨌든 저는 그 현장들이 하나의 한국 사회적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비록 그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은 폭력과 배제의 언어였지만, 그걸 말하게 만든 감정의 뿌리에는 공동체에 대한 애착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정말 어떤 사람들은 공동체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게 배제나 혐오로까지 나오는 거구나, 그걸 봤어요. 광화문도 가봤고, 대전도 가봤고, 광주도 가봤어요. 그런 장면들을 보면 결국 좌파나 우파를 떠나 한국 사회에는 어떤 공동체를 지키고 싶다는 열망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태령에서 트랙터를 맞이하던 풍경이나, 광화문에서 사람들이 뭔가 외치던 모습이나, 표현하는 방법이나 공동체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갈려요. 하지만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지금 한국 사회의 OS로는 안 돌아간다는 걸 다들 느끼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리눅스를 깔 거냐, 다른 운영 체제를 만들거냐, 그런 논쟁을 하는 단계에 왔다는 거죠. 이번 탄핵이 단순히 ‘정권 교체’나 ‘내란 세력 척결’로 끝났으면 오히려 더 빨리 정리됐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고, 긴장감과 갈등이 큰 건, 좌파든 우파든 지금의 OS로는 안 된다는 걸 다들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지금 이 한국 사회가 서 있는 잔해는 무엇인가?” 그걸 고민하다 보니까 결국엔 ‘6공화국’이라는 구조 자체가 잔해더라고요. 보통 6공화국을 말할 때 ‘5년 단임 대통령제’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그게 단지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양식’이라고 생각해요. 박정희 시절의 근대화를 바탕으로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압축 근대 문명의 완성형 같은 거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두 가지 시스템이 있었죠.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사이좋은 세계화 시스템’, 다른 하나는 그 틈을 활용한 한국 재벌 시스템. 재벌들이 미국과 중국 양쪽에 수출하면서 그 돈이 국내로 들어오고, 그 돈은 대부분 수도권 주택 자산, 특히 아파트로 변환되죠. 아파트가 왜 중요해졌냐면 학군 때문이에요. 기본적으로 “내 자식은 이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좋은 학교 나와서 명문대 가고, 그렇게 해서 나처럼 살지 않거나, 혹은 최소한 나만큼은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어요. 정상성과 근대성을 반복 재생산하기 위해 라이선스를 따고, 대기업 들어가고. ‘정상성의 방해 요소’들을 다 쳐내고 “경쟁해서 이겨라, 이겨서 정상성 획득해라”라는 프레임이 바로 6공화국이라는 OS가 생산한 근대 문명의 양식이에요. 저희 세대는 거기서 한 번도 자유롭지 않았어요. 공부 못 하면 공부 못하면 탈락자고요. 사회적으로 낙인찍히고요. 대학 졸업하고도 끝이 아니에요. 결혼도 경쟁이고요. 어느 아파트에 잘 투자하느냐,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느냐, 그게 다 또 다른 계급 재생산의 회로였어요. 그리고 우리 세대 안에서도 서로를 비교하고, 서로를 억제하면서 그 회로를 강화해 온 측면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리고 그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요. “너희는 그냥 그렇게 살아라”라는 식이죠. 그렇다 보니 정치가 이 구조에 관한 얘기를 하긴 하지만 정작 본질적인 차원에서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하느냐보다는 대부분 “제도 몇 개 바꾸면 되지”라는 수준에서 머물 때가 많아요. 사실은 우리가 “이런 삶이 잘못됐다”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삶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 해요”라고 하면 정치권에선 꼭 “네가 뭘 몰라서 그래. 너도 애 낳아 봐라” 이런 식으로 나오고요. 그러면 결국 사회운동 하던 사람들이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에서 겉돌면서 소리 지르다가 지쳐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흐름은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지금은 세계적 차원에서 구조 자체가 붕괴하는 중이죠.
결국 한국의 중산층 축적 모델이라는 것도 미국과 중국이 사이좋을 때만 가능한 모델이었어요. 그게 가능했던 건, 근대성의 최정점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때문이죠. 그 핵심은 ‘돈’이고, 돈을 벌기 위해선 무한 팽창을 해야 해요. 자연은 고려되지 않고, 중국과 미국은 서로 싸울 수 없죠. 왜냐하면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사실 거기엔 자존심, 계급, 환경에 대한 통제권 같은 어마어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그게 지금 무너지고 있어요. 이 상태로 간다면, 87년부터 지금까지 6공화국을 굴려온 사람들— 그러니까 40대에서 60대 정도의 중년들이 상상했던 그 ‘자연스러운 경로’가 더 이상 재생산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 세대는 사실 그걸 별로 재생산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런 불만들이 지금 문명과 개인 사이에 놓인 공간에서 정치가 다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국 “지금 우리는 어떤 잔해 위에 서 있는가?”라고 물으면 저는 미·중 세계화와 아파트가 붕괴하고 있는 잔해,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폭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2. 감각: 우리에게 지금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양애진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감각’이라는 키워드까지 넘어온 것 같아요. 결국은 이전 세대와 지금 우리 세대의 감각이 아예 달라진 것 같아요. 저도 탄핵 집회에 찬성 쪽이든 반대 쪽이든 다 가봤거든요. 그 현장에서 제일 의아했던 게, “각 세대가 가진 것이 대체 무엇일까?”라는 거예요. 세대 간의 공통감각이 거의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찬성 집회에서는 40·50세대 여성들과 20·30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연대를 하더라고요. 반대 집회에서는 반대로, 2030세대 남성과 7080세대가 또 다른 연대를 이루고 있어요. 그러니까 도대체 20·30·40·50·70·80 세대 각각은 뭐고, 특히 2030은 왜 이렇게 쪼개져 있나? 그게 너무 궁금하고 의아했어요. 이러한 단절, 균열, 분절을 보면서, 감각이라는 키워드로 한번 넘어가 보면 좋겠어요.
함은세 | 저는 최근에 주목을 받는 어른 두 분을 꼽자면, 한 분은 김장하 선생이고, 다른 한 분은 프란치스코 교황인 것 같아요. 김장하 선생님은 사실 예전에도 다큐멘터리에 나오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문형배 재판관이 ‘김장하 장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화제가 됐죠. 그분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신 게 아니라, 60년대에 이미 호주제 폐지 운동 같은 걸 하셨던 분이에요. 시대적으로 보면 굉장히 드물고 선구적인 실천이죠. 그리고 또 한 분, 프란치스코 교황도 최근에 선종하셨지만 지금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두 분이 지금 시대에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스무 살 무렵에 어떤 문학 매거진에 연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잡은 키워드가 “우리 세대에겐 어른이 필요하다”였어요. 당시 영화 〈미나리〉가 나왔고, 윤여정 선생님이 크게 주목받았던 시기였죠. 도움받고 싶은 어른, 그러니까 ‘어른’이라는 존재와 단어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시대가 왔어요.
어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우리가 진짜 되고 싶은 존재 사이에는 경계와 거리감이 있어요. 그 경계에 대해서 더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 MZ세대가 싸가지 없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따를 만한 어른이 없다는 것, 롤모델의 부재에 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거나 나도 모르게 “저런 길을 걷고 싶다”라는 니즈 자체가 완전히 상실된 시대라고 저는 봐요. 그런데 김장하 선생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있어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였지만, 저는 그분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까지 갔던 분이라고 생각해요. 시대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잖아요. 21세기에 태어난 사람과 조선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적 한계를 계속해서 넘어설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저는 그게 계속해서 시대를 감각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 모습에서 더 영감을 얻고, 그로 인해 사람이 조각된다고 믿게 됐어요.
예전에 트럼프 1기 때는 전형적인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층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2030 세대의 적극적인 지지가 트럼프 당선에 큰 영향을 미쳤잖아요. 이제는 보수나 진보로 단순히 나눌 수 없다고 봐요. 그 결이 너무 다양해졌고, 세대별로 받아들이는 감각도 달라요.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아직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정보를 판단할 기준도 없는 상태에서 먼저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요. 그래서 저는 결국 미디어와 교육 체계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뭔가를 연구하고 공부하고, 그런 시기가 있었죠. 저는 그게 4050의 시대였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지” 하는 열망이 있었고,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타파도 하고, 자기 의심도 하면서 공부를 해왔던 거죠. 그런데 지금의 저희 세대는, 공부할 수 있는 도구 자체가 없는 세대라고 느껴져요. 공교육이라 불리는 학교에 가서 시험공부한다고 해도 사실은 사교육 학원에서 받은 문제를 풀고 있어요. 그러니까 공교육이라는 유령 같은 틀 안에서, 정작 자기 생각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건 거의 없다는 거죠. 이게 단지 나이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지금의 2030이 나중의 7080이 될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이가 아니라 그 시대로 한정해야 한다고 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게, 예전에 했던 발언을 나중에 스스로 뒤집기도 하고, 한동안 LGBT 커뮤니티에 대해 말을 아끼다가 몇 년 뒤에는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실 것”이라고 말했잖아요. 그게 결국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힘이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지금 저희 세대에게는 그런 힘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자신이 옳다고 너무 쉽게 믿어요. 사실 저도 그렇고 제 주변도 그렇고,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간에, 자기의식 없이 그냥 자기가 말하고 믿으면 그게 정답이에요. “내가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잘 안 해요. 그런 감각 자체가 사라진 거죠. 그러니까 통제가 안 되고, 제어되지 않은 감정이나 주장들에 더 몰입하고, 더 과도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실 범선 님이 얘기했던 것처럼 명확한 이데올로기가 있었잖아요. 반공 아니면 민주화. 그런데 지금은 그런 키워드조차 없는데 왜 이렇게 뚜렷하게 나뉘는가, 저는 이걸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한다고 보기에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임명묵 | 이번 탄핵 정국에서 정말 흥미로웠던 건, 레거시 미디어의 장악력이 생각보다 훨씬 헐거워졌다는 점이에요. 물론 아직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고, 여전히 영향력도 크지만, 이미 구조적으로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사실 진보 진영 쪽은 비교적 일찍 뉴미디어로의 전환을 시도했어요. ‘딴지일보’부터 시작해서, ‘나꼼수’ 같은 실험들이 있었고요. 요즘 MBC도 보면, 제도적으로만 레거시 미디어지, 형식적으로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선별해서 제공하는, 굉장히 알고리즘적인 뉴미디어 감각으로 움직이고 있죠. 그런데 보수 진영은 이 전환이 훨씬 급진적으로 일어났던 것 같아요. 2016년 박근혜 탄핵 이후, 유튜브 생태계가 보수 쪽에서 폭발적으로 확산했거든요. 진짜 한국은 대단한 나라인 게, 노년층이 이 흐름에 너무 잘 적응해 있다는 거예요. 태극기 집회를 가면 다들 셀카봉을 들고 개인 방송을 하고 있어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고, 이를 엘리트들에게 통제받고 싶어 하지 않는 감각이 강해졌어요. 결국 이번에 우파 쪽 대중운동이 그렇게 강도 높게 폭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유튜브 중심의 뉴미디어 생태계, 그리고 디시인사이드 같은 커뮤니티 기반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죠. 가치 판단을 떠나서, 지금은 진보든 보수든 양쪽 모두 “내 생각이 레거시 미디어에 의해 걸러지고 통제당하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라는 감각이 퍼져 있어요. 문제는, 사실 진보 진영도 음모론 문제에 대해선 책임이 크다는 거예요. 후쿠시마 이슈 같은 것,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진보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거든요. 이번엔 보수 진영에서도 온갖 음모론이 진짜 폭발했죠.
그럼 이제 우리는 “레거시 미디어의 중심성을 다시 복원해야 하나?”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트럼프도 이번에 게임 방송에 나가서 인터뷰를 했어요. 이건 사실상, 레거시 미디어가 더 이상 대중 여론에 이성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시대라는 걸 보여준 거죠. 애초에 레거시 미디어라는 게 만들어졌던 조건을 생각해 보면, 250년 전 계몽주의, 이성주의, 그 이후의 신문이나 라디오 같은 매체 기술이 전제로 작동했던 시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엘리트들이 진짜 이성적인가?” 하고 의심하죠. “이성적일 리가 없어. 그냥 훈련만 많이 받은 인간들일 뿐이지.” 이런 감각이 일반화된 시대란 말이에요.
두 번째로는 쌍방향 실시간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너 왜 내가 듣고 싶은 말 안 해줘? 나는 전한길 선생님 말 들을 거야.” “아니, 나는 김어준 말 들을 거야.” 이렇게 흩어질 수 있는 상황이에요. 여기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정보를 감각하고, 어떻게 입장을 정하느냐 했을 때, 결국에는 합의된 수준을 가진 AI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봐요. 물론 AI도 인간이 만드는 것이긴 한데,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그걸 작동시키는 주체가 이제는 신뢰를 잃은 ‘미디어 엘리트’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내가 이걸 믿어도 되나?”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묻게 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다만, 현행 GPT 정책은 자기 의심을 하지 않게 만드는 구조예요. 다들 아시겠지만, 뭐 하나 물어보면 “역시 너는 엄청나!”라고 말하는 엄청난 F(감정형)잖아요. T(사고형)적 답변을 뽑아내려면 엄청나게 많은 명령어를 써야 해요. 사실 GPT가 영리한 거죠. 왜냐하면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어 하고, 자기 의심하기는 싫어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책적으로 사회 합의를 통해, 제대로 된 자기 회의와 의심을 하면서 공동체를 함께 꾸려나갈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정책을 짜야 해요. 사실 GPT가 굉장히 좋은 건, 내가 어떤 음모론이든, 가설이든 계속 물어보면서 스스로 검증할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하다는 거예요.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하기 싫어서 안 할 뿐이지.
결국 우리는 “AI의 기준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어요. 이건 사회적 합의의 문제예요. 레거시 미디어에 의해 통제받는 시대는 이미 끝났고, 지금은 엄청난 기회와 리스크가 동시에 터지는 시점이에요. 이 상황에서 해결책은 새로운 기술 속에서 찾아야 해요. 예전처럼 “우리 합리적 시민 교육을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웁시다”라는 방식으로는 진짜 될 수가 없어요.
전범선 | 앞서 말했던 250년은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당시 이야기예요. 그때의 기본 전제, 중앙집중적인 인쇄매체, 그러니까 신문, 활자 언론이 공공의 여론을 조성하고 그걸 통해 중앙 정치가 작동하는 구조였어요. 그 구조가 지금은 완전히 무너졌죠. 그지금까지 2,500년 동안 문자를 기반으로 한 문명이었던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문자가 아니라 영상이 중심이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문자가 지배했던 시대 자체가 끝나가고 있다는 거예요. 말로 소통하는 게 아니라, 춤으로 몸으로 소통하고, 카리스마나 아우라로 메시지를 전파하잖아요. 트럼프가 말하는 것처럼 무슨 말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 시대가 이미 되었어요. 내가 합리적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주인공인 게 중요한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5만 년 전’ 이야기를 한 이유는 우리가 지금 문자 언어 이전의 소통 방식으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뉴럴링크 같은 기술이 등장하면, 언어 없이 전기신호로 마음을 주고받는 시대가 오잖아요. 영상만 보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예쁘고 멋있으면 돼요. 그게 인플루언서가 되고, 정치적인 추동을 할 수 있게 된단 말이죠. 이건 오히려 원시적이에요. 디지털 기술이 만든 초고도 문명이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우리를 되돌리고 있다는 거죠. 이미 우리의 이성, 감성, 영성은 디지털 안에서 움직이고 있어요. 그런데 그 마음의 공간은 너무나도 무질서해요. 마치 미국 혁명 전의 아메리카 같아요.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가서 원주민을 죽이고, 그 위에 새 질서를 실험하기까지, 처음 150~200년은 난장판이었잖아요. 지금 메타버스는 그 난장판 상태에 있다고 봐요. 콘텐츠는 극단적으로 쏟아지고, 정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정론이라는 게 ‘맞다’는 게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틀이 있어야 하는 건데 지금 디지털 미디어상에서는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있잖아요. 심지어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조차 몰라요. 이미 우리의 마음은 메타버스에서 만들어지고 있어요. 아무리 노년이라도 이미 마음은 《사상계》나 《한겨레》, 《조선일보》를 읽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유튜브 보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죠.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광화문 같은 아고라 광장에 모여서, 근대식 정치 질서를 재현하려 하면 시스템 에러가 뜨는 거죠. 근대식으로 광장에 모여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디지털상에서 어떤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퍼블릭한 미디어가 있어야 해요. 그게 아예 없어요. 정부도 안 만들고, 정치권도 안 만들고, 그럴 의지도 없어요. 그럼 우리가 만들어야죠. 디지털 원주민 세대가 만들어야지 디지털 이주민 세대는 만들지 않을 거예요. 물론 《조선일보》도 아니고 《한겨레》도 아니겠죠. 그냥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공동체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저희 세대가 해야 할 공동체 회복의 핵심 과제라고 생각해요. 같이 볼 수 있는 미디어, 같이 들을 수 있는 콘텐츠, 예전엔 《조선일보》 기자랑 《한겨레》 기자가 아무리 서로 싫어도 만나서 술 한잔할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극우 유튜버랑 극좌 유튜버가 서로 만날 일이 없어요. 아예 다른 우주에서 살아요. 서로 다른 음모론만 소비하면서, 말이 안 통하는 거죠. 그래서 전 《사상계》가 그걸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이제는 디지털에서 해야 해요.
임정희 | 저는 겉으로 보면 아주 안정된 삶을 살고 있거든요. 외고 나오고, 그 코스대로 쭉 가서 지금도 괜찮은 직장 다니고 있고요. 그런데도 불안해요. 겉으론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데, 왜 이렇게 스스로 불안할까, 왜 이렇게 소외감을 느낄까 싶은 거죠. 이건 사회적으로 주어진 타이틀이나 지위와는 전혀 다른 문제 같아요. 개인으로서, 나라는 존재가 사회에서 점점 더 소외되는 느낌이에요. 이 불안감이 단순히 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월급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집은 없고, 결혼도 아직 안 했고요. 이런 조건들이 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잖아요. 말씀하셨듯이 근대부터 계속 이어져 온 그런 기준들요.
지금은 딱 뭔가 알이 깨어지려는 시점, 아니면 이미 알이 떨어져서 깨진 채로 다 흩어져버린 딱 그 변곡점에 놓인 것 같아요. 거기에서 불안감이 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 친구들을 봐도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기준에 스스로가 맞지 않아 위축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저희 밀레니얼 세대는 Z세대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Z세대들은 조금 더 자기 의견을 확실하게 하는데 솔직히 저희는 생각이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그냥 주어진 걸 열심히 해오다 보니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 꿈이 뭔지 모른 채로 흘러오는 친구들이요. 뒤늦게 나를 찾아가는 과정과 이 사회 변화를 같이 겪고 있어서 더 혼란스러운 게 아닌가 싶어요.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 사회 안에서 나라는 개인의 위치와 역할을 찾는 지점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혼란감이 들어요. 주변에서 보기엔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진짜 만족하나?” 물어보면, 잘 모르겠거든요. ‘이 길을 따라가면 행복할 거야’라는 생각이 흔들리니까요. 이 모든 혼란, 불안, 소외의 감정이 말하자면 하나의 ‘계몽’의 과정인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감정들—불안, 불확실성, 혼란, 소외감—을 같이 나눌 공간이 없는 것 같아요. 온라인은 있지만, 사실 인터넷 공간은 같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게 아니라, 각자 방 안에서 혼자 접속하는 거잖아요. 편하게 이런 담론을 얘기하고 의견을 나누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부재해서 더욱 소외감을 심화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광장에 진짜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냥 사람들 만나려고 나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광장이 분명 어떤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였던 것 같아요. ‘같이 있으면 뭔가 될 것 같은데’하는 희망을 찾으려고 나온 사람도 분명히 있었고요. 그건 보수든 진보든 다 마찬가지였던 거 같아요. 심지어 진보 쪽에서도 한 당이 아니라 여러 당이 연합해서 같이 하는 것도 있었잖아요. 진보든 보수든, 모든 이들이 혼란 속에서 새로운 흐름의 가능성을 감지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모든 감각의 혼란과 불확실성이, 지금 우리가 절벽에 서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요. 이 절벽에서 떨어지면 내가 죽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건지 알 수 없어요. 그런 상황 속에 있기 때문에 더 불안하죠.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질문을 다들 갖고 있는 거예요. “우리 새로운 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이건 우리가 만든 OS도 아니잖아.” 이 질문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시스템의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구성하려는 실천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는 반복되는 사회적 각성 속에서도 제도 설계의 일관성이나 장기적 비전보다는 감정적 동원과 단기적 대응에 의존해 왔어요. 그 결과, 제도는 삶을 견고하게 지탱해 주는 장치가 아니라, 때로는 불신과 소외의 대상으로 전락해고, 시민들은 제도를 외면하거나 우회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견뎌야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제도란 무엇인가, 제도는 어떻게 살아 있는 질서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절실히 다가옵니다. 변화의 열망이 구체적인 제도 설계로 전환되지 못한 채 감정의 파고로만 머물렀기 때문은 아닐까요. 제도는 삶을 지탱하는 구조이면서도, 때로는 삶을 배제하는 장치로 작동하는데 그로 인해 시민은 제도를 신뢰하지 않고, 제도는 시민의 삶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현실을 말하는 언어와 제도를 구성하는 언어 사이의 불일치—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좌절을 경험해온 거죠. 시민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플랫폼, 그리고 채널들이 많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수동적 주체가 아니라, 주체자로서 제도의 설계에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3. 틀: 우리를 둘러싼 틀은 유효할까요?
(…)
4. 함께: 우리가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
5. 불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살아있는 것은?
(…)
(이어질 내용은 《사상계》 통권 207호, 재창간 2호 | 2025 여름호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